검색결과
' 서울법대시위사건'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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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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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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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정보부원, 의문사 제1호의 죽음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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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사료관이 소장하고 있는 사료 중에도 중앙정보부와 그 후신인 안기부의 혹독한 고문과 조작사건, 의문사를 고발하는 사료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그 중에 특히 눈에 띄는 사료가 하나 있다. 전 중앙정보부원 최종선 님이 기증해주신 육필 기록, 우리나라 의문사 제1호라고 얘기하는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의 의문사를 밝히는 비망록이다. 최종길은 최종선의 형이다. 1973년 10월 2일, 유신체제에 항의하는 첫 시위가 서울대에서 일어났다. 대학가의 시위는 일파만파 번져갔다.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과 구속, 연행에 당시 법대의 학생과장이었던 최종길 교수는 교수회의에서 "부당한 공권력의 최고 수장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장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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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전자 뚜껑으로 통과시킨 3선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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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문턱에 도달하였다! 학우여, 비장한 각오로 대열을 정비하자!” 서울 법대생의 집회 소식은 곧 전국의 각 대학으로 전해졌다. 전국 대학에서 연이어 시국선언 대회와 성토대회가 터져 나왔다. 남북간의 충돌로 반공과 안보논리가 득세하면서 숨죽여 지낼 수밖에 없었던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다시 불을 댕긴 것이었다. 시위는 갈수록 격화되어 7월 1일에는 8천여 명이, 7월 2일에는 6천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강경하게 진압작전을 펼쳤다. 정부도 바쁘게 움직였다. 예상대로라면 순탄하게 개헌을 단행해야할 시점에 예상 외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던 것이다. 아무리 김신조가 넘어오고, 푸에블로호가 납치되고, 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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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열을 아시나요? - 4.19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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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사건은 그때까지만 해도 신사적인 시위를 생각하였던 학생들의 가슴에 분노의 불길을 당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4월 19일 아침 조간신문을 받아본 학생과 시민들은 경악과 분노에 휩싸였다. “깡패들이 학생들을 습격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길고 긴 자유당 정권의 전횡에 혐오와 격분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보라! 갖가지 부정과 사회악이 민족정기의 심판을 받을 때는 왔다! 이제 우리는 대학의 양심으로 일어서노니 총칼로 저지 말라. 우리는 살아있다. 동료의 무참한 살상 앞에 안일만을 탐할소냐! 한숨만 쉴소냐! 학도여, 우리 모두 정의를 위하여 총궐기하자!” 신설동에 있던 대광고등학교 학생 일천여명이 먼저 교문을 박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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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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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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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32개 대학생 대표들, ‘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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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4.5.2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같다. ▶서울대 25일, 서울대 학생들은 문리대 구내 4월학생혁명기념탑 앞에 모여 낮 12시 20분부터 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를 열었다. 문리대, 약대, 법대, 미대 등 본부 부근 단과대학생 약500명『동아일보』 1964.5.25 석1면, 『동아일보』 1964.5.25 석7면, 『경향신문』 1964.5.25 석1면. 한편 참여학생 수에 대해 동아일보는800명(1면), 500명(7면)으로 경향신문은 500명(1면)으로 보도이 모인 대회장에는 “학원의 자유를 사수하자”, “구속학생 및 시민을 즉각 석방하라”,“폭력 정치집단은 자폭하라”는 등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다수의 사복 경찰관이 눈에 띄었다. 이날 대회는 혁명기념탑 앞에 무릎을 꿇고 묵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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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들 대규모 시위, 고려대·서울대 등 약 3,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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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4.6.2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서울상대 2일, 약 400명의 서울대 상대생들은 상오 11시 15분부터 교내에서 ‘매판세력성토대회’를 열고 “매판세력타도”를 선언한 다음, ‘매판세력’을 신랑으로 하고, ‘가식적 민족주의’를 신부로, 신제국주의를 주례로 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식에서 주례는 “특히 신부는 매판자본과 사이좋게 학생을 기만하는 데 공을 세웠다. 또한 나 제국주의의 정체를 숨기는 데 충성을 다했으니 너의 결혼을 축하하노라. 신부는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학도들을 계속 협박하라. 안 되면 최루탄을 쓰라. 무엇보다도 나와 너희들 부부의 정체를 잘 알고 있는 학생이 가장 두려우니라”는 주례사를 하였다. 낮 12시경 시위에 나서 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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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예종·김정강학생데모 배후로 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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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4.7.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데모를 공산 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한 증거 문건을 압수하고, 도예종(당시 41세, 1975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과 김정강(서울대 정치학과 3년)을 국가보안법 위반 및 내란 소요 등의 혐의로 각각 현상금 10만 원씩 전국에 수배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7월 18일 내무부장관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집결체인 불꽃회가 학생 데모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며 김정강과 김정남 등 30여 명의 이름을 계보도와 함께 발표했다. ‘불꽃회 사건’이 터진 것은 김정강이 조직 구상을 하면서 메모해 둔 노트가 경찰에 입수됐기 때문이었다. 김정강에 의하면, 불꽃회는 김정강과 김정남(서울대 정치학과 4년)이 1964년 초에 만든 서울대 문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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